2024. 11. 4. 22:34ㆍLife-essay
96년 9월 나는 진주의 공군훈련소에 있었다.
지금도 9월은 덥지만, 난생처음 경험해본 남쪽의 햇살은 더욱 뜨겁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까까머리 청년들...
그들과 나는 하나의 기수라는 이름으로 걷는 방법부터 밥먹는 방법, 말하는 방법까지 갓난아이처럼 모든것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참 무서웠던 시간이였던게 생각난다.
마침 함께 훈련받던 하사관 후보생들이 지나갈때 목청이 터져라 소리지르는 그들을 보며 무서웠고,
그들보다 우리 목소리가 작다며 얼차려를 받을때도 무서웠고,
조교에게 화장실 가겠다고 이야기하는것도 어려웠던 시간이였다.
암튼 그 5주간의 시간동안, 나를 지탱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며, 적었던 낙서가 기억난다.
9월의 햇살이 가득한 연병장에서 당신의 얼굴을 기억해봅니다.
나를 보며 밝게 웃어주던 그 미소를 기억해봅니다.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었던 당신의 부드러운 얼굴을 기억해봅니다.
모래먼지 폴폴 날리는 짠내나는 연병장 모래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봅니다.
부르면 웃음이 먼저 배시시 배어나오는 당신의 이름을 적어봅니다.
당신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이어서 행복했던 그 이름을 기억해봅니다.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당신의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이곳이지만,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는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
당신과 함께 거닐었던 거리들,
그 모든것들을 기억하며, 웃음 짓습니다.
당신은 내 곁에 없지만, 당신은 언제나 내 곁에 있습니다.
이 연병장 모래바닥에도 당신의 이름은 있고,
어둔 밤 높이 뜬 달속에도 당신의 얼굴은 있고,
부드럽게 얼굴을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속에도 당신의 손길은 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그립고,
그렇게 당신은 내곁에 있습니다.
이 낙서를 간 크게 훈련소 내내 보관하고 있다가,
자대가서 여단소식지?(천마사랑방 이였던가?)에 내서 첫 페이지에 실렸던 기억이 난다.
뭣도 모르는 이등병이, 펜팔 잡지에 사연을 내듯이 휴가가서 우편으로 보냈던 기억이...(나 고문관이였나?)
그때 이 연시의 주인공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기억이나 할까?
왜 헤어졌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여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행복하길...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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